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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2019 이전 여행

2015년 10월 설악산

by 실콘짱 2021. 1. 3.

겨울이라 야외활동이 뜸하다 보니 자연스레 책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난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몇몇 여행은 블로그에서 찾을 수가 없다.

여행 후 사진이 너무 많으면 정리를 미루게 되고, 며칠이 지나게 되면 여행기 올리는 것이 시들해진 탓이다.

원래 블로그를 시작한 목적이 지난 발자취를 남기자는 것이었는데, 참, 많이 불성실하다...

 

지난 몇년간은 겨울에 다낭을 다녀오는 바람에 특별히 시간이 나지 않았는데,

어차피 당분간 여행을 가기 힘든 상황, 지난 여행기로 긴 겨울을 보내기로 한다.

지난 여행 디비기 1탄 - 2015년 가을 다녀왔던 설악산 이야기로 시작해본다.

 

때는 바야흐로 2015년 10월 중순,

역이민 한 지 2년 차였고 차량 없이 2년 내내 걸으면서 나름 건강에 자신이 붙어갈 때였다. 

지인이 설악산으로 단풍구경을 가자고 해서 OK를 하고 자신만만하게 오색으로 출발을 했다.

 

▼ 대전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도착한 오색약수,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한다.

지인이 예약해둔 민박집에 짐을 풀고.

▼ 아직 본격적인 단풍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오색약수 근처는 비교적 한산했고, 민박도 저렴하게 구했다.

민박 바로 뒤에는 시원한 개울이 있었는데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게 아쉽다.

▼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 관광지라 그런지 근처에 식당이 많았다.

먼저 눈에 띄는 식당에서 황태구이정식에다 불고기를 추가했는데 아주 맛났던 기억이 난다.

하긴 내 입맛에 맛없는 식당 찾기가 훨씬 어려울 터 ^^

식사를 잘 마치고 민박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는데, 사실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10월 중순인데 산속의 저녁 날씨가 쌀쌀했고, 맘씨 좋은 주인장이 열심히 불을 때주셨는데,

온돌이 너무 뜨거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은 일정이 촉박하여 (왜 그렇게 공격적인 산행 계획을 잡았는지...) 새벽 4시에 출발하기로 결정된 바,

자는 둥 마는 둥 3시 반쯤 기상을 하였다.

 

▼ 4시쯤 도착한 설악산 입구. 

이 시간에도 대형버스를 타고 온 단체 등산객이 있었다. 둥글게 둘러앉아서 인원점검을 하는 듯.

▼ 간단하게 다리를 풀고 등산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당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일행 중 헤드랜턴이 있으신 분을 따라 간신히 발을 내디뎠다.

▼ 2시간을 올라왔는데 아직 채 2km도 벗어나지 못했다. 

오색약수에서 대청 쪽으로 오르는 길이 짧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험난한 편.

▼ 등산로에는 온통 돌이 넘쳐난다. 지금 다시 봐도 아찔하네.

▼ 6시 20분쯤 되니 동이 터서 앞뒤가 분간이 되기 시작한다. 오메, 단풍 들었네~

▼ 돌과 바위는 죄다 이쪽에만 쌓아놓은 것 같네.

▼ 원래 등산로 입구의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려고 했지만, 식당이 열지 않아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하고 출발한 상태.

아쉽지만 오이 한 점으로 아침을 대신해본다.

▼ 날이 밝아지니 설악산의 절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규모는 작지만 시원한 폭포도 보이고.

▼ 계속 물은 너무나 맑아 발을 한번 담가보고 싶을 정도.

▼ 등산 3시간째, 대청봉까지는 2km밖에(?) 남지 않았다.

▼ 험한 산길은 계속 이어지고.

▼ 제법 많이 올라온 것 같다. 저 멀리 몇 개 봉우리가 발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 거의 막바지인 듯 경사가 심해진다. 돌길은 여전히 계속된다. 힘내자!

▼ 9시 20분 드디어 대청봉 도착! 

오색약수부터 5시간 20분이 걸렸다. 빠른 건지 느린 건지.

▼ 이제 모든 봉우리가 저 멀리 내려다 보인다.

▼ 이제부터는 하산길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 대청대피소 도착, 사실 이쯤에서 등산을 마무리했어야 했던 것을...

다리가 살짝 아파오는 것 같았는데 대청대피소에는 빈자리가 없어 계속 산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컵라면을 먹고 싶었지만 뜨거운 물을 구할 수 없다고 해서, 햇반에 매운 참치캔을 비벼먹었다.

세상 처음 먹어보는 희한한 맛 ㅎㅎ

▼ 봉정암을 거쳐 백담사 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하산길 11km쯤이야 하면서.

▼ 그런데 가도 가도 돌이 참 많네...

▼ 봉정암 도착.

▼ 대청대피소에서 먹은 참치비빔햇반이 부족했는데, 봉정암에서 고맙게도 미역국밥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런 게 진짜 불심이지, 나무아미타불~

▼ 그런데, 다리가 점점 아파온다.

혹시나 해서 챙겨 온 등산 스틱에 의지하면서 걷는데도 자꾸만 일행에 뒤쳐진다.

▼ 경치는 참 좋은데 몸이 불편하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걸...

▼ 어째 하산길이 등산보다 힘든 것 같다.

돌이 많아 발을 디딜 때마다 힘이 들어가는데 무릎 통증이 점점 심해온다.

봉정암에서 1.6km 내려오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

▼ 결국 이쯤에서 사달이 나버렸다.

등산스틱에 의존하며 비틀비틀 내려오다가 계곡 옆쪽으로 넘어져버렸다.

다행스럽게 나뭇잎이 쌓인 쪽으로 넘어져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다리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태.

▼ 지금부터는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 멀리 앞서가던 지인이 너무 놀라 뛰어왔고, 주변 등산객들의 도움을 받아 구급헬기를 부를 수 있었다.

구급헬기에서 구조원이 내려왔고, 배낭까지 포함해 나를 둘러업고 헬기로 올렸다고 한다.

▼ 난생처음 구급헬기도 타보고, 참 많이도 출세(?)했다.

 

간단하게 뒷이야기를 정리하자면,

구급헬기는 속초의 초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했고, 나는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를 타고 강릉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무릎 고통이 너무 심해 뭔가 심하게 잘못되지나 않았나 걱정했지만 X-Ray를 찍어본 결과 큰 이상은 없다고.

그것보다 의료비 걱정이 컸었는데 응급헬기, 구급차 비용은 무료이고, 병원비도 생각보다 저렴하게 나왔다.

미국 같으면 구급차비만 수천 불 정도, 병원비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너무 무리한 등산을 한 것에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걷는데 자신 있다고 생각한 자만심도 한몫한 것 같고.

아무튼 이번 설악산행을 통해 대한민국 만세라는 생각이 들었고, 역이민 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더 굳어졌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가을 설악산의 절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는 것.

특히 백담사로의 하산길이 좋다하던데.

이후 P2가 너무 걱정을 하여 설악산에 다시 못 가본 것은 어찌 보면 자업자득...